사람과 함께하는 위드인뉴스 :: [리뷰] 사슴의 뿔처럼 잘려나간 김과장의 순수, 연극 '뿔'

[리뷰] 사슴의 뿔처럼 잘려나간 김과장의 순수, 연극 '뿔': 2018.06.11 14:48 입력

[위드인뉴스 홍승범] “그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김과장은 머리 위의 뿔을 보았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머리 위에 뿔이 달려있다. 화려하고 거창해 보이는 그 뿔은 안타깝게도 자랑스럽게 지니고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보기 좋게 잘릴 운명인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잘릴 수 밖에 없는 이 뿔은 어제 본 사슴의 머리에 달려있던 그 뿔이다. 연극 <뿔>은 국내의 대표적 극작가 육성 프로그램인 ‘봄 작가, 겨울무대’가 올 해 내놓은 따끈따끈한 작품이다. 2013년 이후 중단되었다가 올 해 다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신인작가에게 첫 작품 보다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을 세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 <뿔>은 시의성 깊은 소재와 실험적인 접근으로 관객들에게 친숙하면서도 묵직한 질문들을 제시한다. 김과장의 트라우마, 환상과 현실을 오고가는 연극<뿔> 김과장, 이부장, 안대리는 인사평가를 앞두고 사슴농장에 1박 2일 워크숍을 간다. 그 날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사슴 뿔 자르는 날이다. 사내 정치에서 위기상황에 놓인 김과장은 이 날 이 부장의 마음을 얻어야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부장님의 마음을 얻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궁지에 몰린 김과장은 술에 취해 자신이 사슴이 되는 환상을 체험하게 된다. <table width="67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670" align="absmiddle" src="http://withinnews.co.kr/PEG/15286959946634.jpg"><div id="news_caption">▲ 5년 만에 부활한 ‘봄 작가, 겨울무대’의 첫 작품 연극 <뿔> (출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페이스북)
</div></td></tr></tbody></table> <뿔>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독특함은 역시 문학성이다. 극이 갖고 있는 전개와 변화의 특성 안에 문학적인 은유와 비유라는 색다른 접근방식이 내포되어져 있다. 소설의 지문을 읽는 듯한 네 인물들의 나레이션은 캐릭터 하나하나의 특성을 대화 이외의 것들로 끄집어내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연극적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환상과 현실을 오고가는 꿈의 모습은 불규칙적이고 비논리적인 전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주인공 김과장의 자아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소 괴기적이고 비약화된 인물들의 표현방식들은 그 표현이 갖고 있는 단순한 의미 이상을 전달하고 있다. 이 강렬함은 극이 전개되면서 점점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결국 잘릴 수밖에 없는 사슴의 뿔, 피할 수 없는 폭력 속의 인간 김과장은 이부장과 안대리라는 회사의 위계적 흐름 속에서 역행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것은 본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회사라는 위계 조직 속에서 순응하고 또 안정을 찾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순응과 안정이 아닌 기득권에서의 배제라는 결과물뿐이다. <table width="7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700" align="absmiddle" src="http://withinnews.co.kr/PEG/15286960095898.jpg"><div id="news_caption">▲ 김과장과 안대리, 이부장 그리고 대현, 4명의 인물 모두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 속에서 극의 소재가 된다 </div></td></tr></tbody></table> <뿔>에 나오는 인물들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써 다중적인 극의 소재 역할을 수행한다. 이부장은 김과장을 평가하고 압박하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그런 어려움을 겪었던 인물이라는 것을 결국 알 수 있게 된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라는 비극을 내재하고 있는 활기찬 아기 사슴의 모습은 김과장 뿐만 아니라 이부장, 안대리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던 대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순수한 것들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그리고 4명의 인물들 하나하나가 모두 ‘회사의 사슴’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습성을 자각한다. 이에 괴로워하는 모습들은 보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괴로운 부분이다. 결국 규격에 맞게 잘려져 나아가고 재포장되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그들은 회사에 적합한 모양으로 재조정된다. 뿔이 잘려 나가는 사슴의 모습처럼 그들은 언젠가 다시 자라나는 뿔을 생각하며 괴로운 살아남기를 지속해 나아간다. 사슴은 초식동물 아니었나? 하지만 김과장은 그 살아남기에 실패한 누군가를 떠올린다. 바로 박차장이다. 조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도 결국 그처럼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그를 더욱 옥죄어 온다. 김과장의 괴기스러운 꿈을 과대망상으로 치부하기에 현실은 너무도 잔혹하고 반복적이다. <뿔>은 표면적으로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표현하는 드라마들의 보편적인 코드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폭력성이 내재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극은 블랙코미디의 요소가 다분하다. '사슴의 뿔은 어쩔 수 없이 잘리는 것.' 이렇게 되뇌일 수밖에 없는, 깊은 쓴 웃음을 지울 수 없는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