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하는 위드인뉴스 :: [리뷰] 음악과 현실의 간극을 넘어

[리뷰] 음악과 현실의 간극을 넘어 <성시연의 말러 교향곡 9번>: 2017.10.29 02:59 입력

[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말러는 <교향곡 9번> 자필악보의 1악장 267마디에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오 사랑이여! 가버렸구나!(O Jugendzeit! Entschwundene! O Liebe! Verwehte!)”라고 썼으며, 434마디 독주 바이올린 악보에 “안녕! 안녕!(Leb’wol! Leb’wol!)”이라고 적었다. 이별을 암시하는 말러의 자필 메모를 바탕으로 후대의 음악학자들은 <교향곡 9번>의 주제를 죽음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최근엔 여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음악학자 베른트 스폰호이어(Bernd Sponheuer)는 “(말러 교향곡 9번에) 이별과 슬픔의 분위기가 깔려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거대하고 구조적이며 건축적인 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신음악의 첫 장을 열고 있다”고 했다. 즉, 이 곡이 말하는 이별은 전통적인 교향곡과의 이별이란 의미다. 말러 <교향곡 9번>의 주제는 이별이다. 그 대상이 젊음이든, 삶이든, 전통적인 교향곡이든. 그런데 성시연과 경기 필하모닉의 연주는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바로 이 둘의 이별이다. <table width="7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700" align="absmiddle" src="http://withinnews.co.kr/PEG/15092133274936.jpg"><div id="news_caption">▲성시연은 회한(悔恨)과 체념의 양가적 정서를 담아 진폭이 큰 연주를 들려줬다. (사진: 예술의전당)</div></td></tr></tbody></table> 디제시스의 세계로 디제시스(diegesis)는 내러티브(narrative)에 종속된 세계다. 음악이든 이야기든 작품 안에 형성된 세계로 선율과 화성, 연주 등 무대 위의 모든 것이 디제시스를 형성한다. 반면 비디제시스는 그 밖의 현실(무대 밖)세계를 의미한다. 예술가들은 이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성시연과 경기 필하모닉의 이번 말러 <교향곡 9번> 연주는 두 세계의 간극이 보이지 않을 만큼 좁혀진 상태에서 이뤄졌다. 다음 시즌 이 둘의 이별이 예정된 까닭이다. 성시연은 회한(悔恨)과 체념의 양가적 정서를 담아 진폭이 큰 연주를 들려줬다. 1악장 104마디를 살펴보자. 말러는 이 부분의 음량을 피아니시모(pp, 아주 여리게)로 설정했다. 이후 점진적으로 음량을 키워 107마디에선 포르테시모(ff, 아주 세계)로 연주해야 한다. 문제는 바로 다음이다. 107마디 첫 박의 음량은 포르테시모이지만 같은 마디 안에서 피아니시모까지 단번에 음량을 줄여야 한다. 말러가 요구하는 폭 넒은 다이내믹을 성시연과 경기 필하모닉을 성시연과 경기 필하모닉은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이날 성시연의 해석과 연주는 낭만적인 기질이 다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악보를 들여다보면 이날의 연주가 말러가 악보에서 요구한 표현을 충실하게 표현한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4악장 도입 바이올린이 G현으로 A(라)음을 연주하자 성시연이 지난 4년간 연마한 경기 필하모닉 현이 빛을 발했다. 두텁고 육감적인 음색에 이어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가세해 풍부한 울림으로 부대를 가득 채웠다. 특히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집중력이 돋보였다. 마지막 화음의 소멸은 근래의 경기 필하모닉의 연주 중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 적막에서 시작한 연주가 침묵 속에 막을 내리자 관객들은 그제야 디제시스의 세계에서 비디제시스의 세계로 돌아왔다. <table width="7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700" align="absmiddle" src="http://withinnews.co.kr/PEG/15092133670081.jpg"><div id="news_caption">▲'사라지듯이'(ersterbend). 말러가 <교향곡 9번>의 마지막에 내리는 음악적 지시다.</div></td></tr></tbody></table>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이날 연주회는 메인 프로그램인 말러 <교향곡 9번> 뿐만 아니라 1부에서 연주한 슈만 <첼로 협주곡> 또한 인상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별을 주제로 한 말러 <교향곡 9번>과 짝을 이뤄 풍부한 시적 상상력과 정서적 고양으로 가득한 슈만의 작품을 연주했단 점이 흥미롭다. 성시연은 말러 <교향곡 9번>의 혁신적인 구성과 현대성에 주목하면서도 전통적인 해석 즉, 죽음이란 주제를 등한시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삶이 주는 정서적 고양을 주제로 한 슈만 <첼로 협주곡>은 결국 “우리는 삶의 한가운데서도 죽음 속에 존재한다”(media vita in mortesumus) 말러의 표현을 연주로써 완성하는 것이다.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 첼리스트 막시밀리안 호르눙(Maximilian Hornung)의 연주 역시 밝고 진취적인 연주로 삶의 한 자락을 표현했다. 호르눙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보잉은 명쾌한 음색으로 이어졌다. 죽음과 이별, 정화의 짝패로서 삶의 고양, 열정의 연주를 들려 준 것이다. <table width="7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700" align="absmiddle" src="http://withinnews.co.kr/PEG/15092134704375.jpg"><div id="news_caption">▲성시연이 연마한 경기 필하모닉의 음색이 빛을 발했다. (사진: 예술의전당)</div></td></tr></tbody></table> 경기필 앱솔루트 시리즈 III – 성시연의 말러 교향곡 9번 일시·장소: 10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성시연 협연: 막시밀리안 호르눙 연주: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로그램 슈만: 첼로 협주곡 A단조 op. 129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 중 ‘프렐류드’ (첼리스트 앙코르) 말러: 교향곡 9번 D장조